분양가 상한제 누굴 위한 핀셋인가
정부는 분양가 상한제로 ‘핀셋 규제’를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지역을 향한 ‘핀셋 규제’보다 더 시급한 것이 있다. 다주택자다. 지역은 동 단위까지 조정을 하면서 다주택자를 향한 규제는 밍숭맹숭한 보유세뿐이다. 서울에서만 풀릴 수 있는 다주택자의 주택만 해도 12만채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우리나라 모든 국민은 집을 가질 수 있다. 보급률이 100%를 넘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 그랬을까. 2007년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집 없는 사람은 숱하게 많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무주택 가구의 비중은 43%다. 10가구 중 4가구는 남의 집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다. 이유는 하나다. 한 사람이 여러 주택을 가지고 있어서다.
주택 보급률이 100%를 넘었던 2007년으로 돌아가 보자. 재산 순서대로 줄을 세웠을 때 상위 1%는 1명당 3채를 가지고 있었다. 10년 뒤에는 6.5채로 2배 이상 늘어났다. 가구 단위로 거주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국민이 느끼는 주택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더 심할 가능성이 높다.
상위 1%는 너무 먼 이야기일까. 상위 10%까지 범위를 넓혀보자. 상위 10%에 속하는 개인이 소유한 주택수는 2.3채(2007년)에서 2.8채(2017년)로 약 0.5채 늘었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정부가 부동산 가격을 잡기 위해 겨냥해야 하는 타깃은 명확하다. 다주택자다. 상위 1%가 10년간 배로 늘어난 주택을 보유하게 된 만큼, 그들이 보유한 주택을 시장에 풀어놓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맥락에서 분양가 상한제는 실책으로 보인다. 다주택자를 겨냥한 정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양가가 낮아지면 다주택자가 집을 내놓겠는가. 지금 필요한 건 지역을 중심으로 부동산을 잡는 게 아니다. 다주택자를 타깃으로 한 ‘핀셋 규제’가 필요하다.
2018년 기준으로 서울에서 3채 이상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 가구는 15만7000가구다. 이들이 2주택씩 남기고 매매를 한다면 시장에 풀리는 물량만 12만 가구다. 정부와 서민이 원하는 주택 가격 안정화와 투기 세력 근절이 함께 이뤄진다는 얘기다.
이 논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근거로 ‘주택 공급 부족’을 든다. 하지만 이미 주택은 충분하다. 30만 가구 수준의 3기 신도시가 완벽히 공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새 주택이 나온다고 해도 가격이 비싸다면 서민에겐 없는 주택이나 다름이 없다.
다주택자에게는 양도세 인상뿐만 아니라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보유세를 적용해야 한다. 무조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는 거다. 그래야 부동산 정책이 알찬 열매를 맺을 수 있다.
허준열 투자의신 대표 co_eunyu@naver.com | 더스쿠프